naver_com_20111229_114937  세상에 공짜는 없다. 웃음도 공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제대로 웃으려면 먼저 웃으려고 하는 마음과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없으면 결코 웃음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지난주 어느 단체에 웃음강연을 한 적이 있다. 모두가 즐겁게 웃으며 강연을 잘 진행했는데 유독 한 분의 여성이 뭔가에 쫓기듯 휴대폰을 들고 안팎을 드나들더니 거의 강연을 마칠 때쯤 되어 불쑥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좀 웃겨봐요.” 갑작스런 돌출발언으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그런데 강연을 신청한 주최측이나 그 모임의 회장은 필자에게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라며 무시해 버렸다. 아마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했다.

과연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하고 강연이 끝난 뒤 생각해 보았다. 틀림없이 그녀는 웃음에 대해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우스개 소리로 그녀를 웃겨야만 마지못해 웃겠다는 태도이다. 웃음강연은 개그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웃음의 원리와 필요성을 설명하고 방법을 알려주고 함께 웃음을 연습하고 과연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웃을 수 있는가를 함께 생각하고 노력해야 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웃음강연이 진행될 것을 필자는 항상 미리 얘기하고 시작한다. 아무리 좋은 웃음도 강연 시간으로 끝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아마 그녀가 들락날락 하느라 필자의 사전 설명을 놓쳤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녀의 웃음의 태도에 관하여 분명히 뭔가 잘 못 되었음을 금새 알게 되었다. 그런데 비단 그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것이 큰 문제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인간은 점점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 웃기는 하지만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스스로 웃어보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고 그냥 누군가 자신을 웃게 해 주기만 바랄 뿐이다.

그렇게 해서는 웃음이 둥지를 틀고 내 곁에 머무를 수가 없다. 내가 먼저 웃으려고 작정해야 웃음도 기꺼이 내 품 안으로 찾아 들게 된다. 이 비결을 깨닫고 안다면 웃음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느 편인가? 웃으려고 노력하는 편인가? 아니면 전혀 노력하지 않고 웃음이 알아서 내 곁에 찾아오고 머물기를 바라는 편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깨달음이 각자의 선택이듯 웃음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웃음을 가볍게 보지 말고 오늘 아니 지금 웃으려고 노력해 보라. 세상은 웃는 자의 몫이다. 그런 사람에게 웃음은 행복과 어우러져 고스란히 안겨온다. 웃음과 행복은 다른 단어이지만 같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