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rah_study_photo1_ghimsmath뿌리깊은 상명하복 문화
요즘 정치권을 두고 정치는 없고 정쟁만 남았다고 한다. 어디 정치뿐이랴. 우리에게는 도무지 토론이 없다. 언제나 네 편 내 편만 있고 옳고 그름만 있으며 타협이란 있을 수 없는 문화가 뿌리깊다. 토론문화는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하고 몸에 배야 한다. 의무교육을 하고 있는 우리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발벗고 나서면 가능한데 이런 움직임은 눈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는 수학만 있는 게 아니다. 1+1이 반드시 2여야 한다는 정답은 초등학교 산수시간에나 통하는 얘기지 성년이 되어 넓은 세상을 살다 보면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다.

전세계에서 유독 우리의 지능지수IQ가 높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안다. 그래서 더욱 토론이란 필요 없고 누군가 지시하면 나머지는 따라가는 것이 편하다고 인식하게 된 걸까? 이런 문화는 우리에게만 국한하지 않는다. 동북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권의 많은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일본과 중국은 더욱 심하다. 북한도 60년 이상을 김씨 일가 독재체재에서 살아가는 것을 보면 이런 토론문화가 없이 상명하복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았음을 짐작하게 된다. 문제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건전한 토론문화 없이 소수의 지도자에게 의존하여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점이다.

토론문화로 지혜를 키워보자
그렇다고 매사 말꼬리를 잡고 와글와글 토론하다 세월을 보내지는 말아야 한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토론문화를 바르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토론하되 어느 정도 선에서 자제력을 발휘하고 서로가 합의점에 도달하는 지혜를 키워야 하는 것이다. 지금 세대에게 이런 것을 강조해봐야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은 학교에서 전략적으로 토론문화를 심어주고 가꾸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멀리 내다보고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30년은 족히 걸릴 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해서 토론문화가 정착되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환하게 밝아진다.

내 의견이 옳은 만큼 다른 사람의 주장도 경청하고 이해하는 배려가 절실하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듣는 연습이 되어 있지 못해 힘들어한다. 토론문화 정착을 위해 질문하기를 생활화 해야 한다. 같은 말이라도 평서문으로 말하면 명령형으로 들리지만 질문하면 권유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내 것을 강요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존중해 주다 보면 폭넓은 지식도 쌓여가고 인내심도 생기고 지혜가 싹튼다. 내가 모두 안다는 생각을 가지면 토론문화는 물 건너간다. 나의 짧은 생각과 지식보다 여러 사람들과의 토론을 즐길 줄 알아야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