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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재화 말글레터 제166호 합정동 칼럼에서 가져 온 글인데 재미있고 유익하여 여기 올립니다.

연기자를 뽑는 오디션 프로에 신조가 확실한 사내가 지원을 했답니다.
“어떤 일을 하시나요?”
그는 다소 건들거리는 몸짓과 말투로 답변을 했습니다. “백수니까 새 직업으로 배우가 되려는 거 아닙니까?”“이전에는 뭘 하셨는데요?”“법조계에 근무했습니다.”“아니, 법조인께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판검사나 변호사는 아니었고 나 때문에 그들이 먹고 살았죠. 건달이었어요, 건달!”

그가 연기자로 붙었는지 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함부로 ‘건달’이라는 말 쓰면 안 되죠. 미안한 이야기지만 신문 배달하는 사람을 ‘언론인’이라고 불러주기 어려운 것처럼요.

뉴스 듣기도 뭐하고, 직접 입에 올리기는 진짜 뭐한 용어들이 앞서의 ‘건달’, ‘깡패’, ‘양아치’, ‘조폭’…그런 말들입니다.
다만, 깡패나 양아치에 지나지 않은 자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건달’의 어원은 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달은 산스크리트어 ‘간다르바’를 한자로 표기한 ‘건달바(乾達婆)’에서 유래합니다.
‘간다르바’는 수미산 금강굴에 살면서 천상의 음악을 맡으며 향만 먹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이를테면 신선입니다. 그 ‘건달바’가 조선시대에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일컫는 ‘건달’로 전복돼 쓰인 것입니다.
‘주먹’들이 낭만과 의협을 내세우며 자신을 포장하기에 깡패보단 건달이 한참 더 고상하게 들렸을 터입니다.

깡패영화로 유명한 <넘버3>에서 주인공 서태주가 자신을 계속 ‘깡패 나부랭이’라고 하는 마동팔 검사에게 “건달이라고 불러주쇼”라고 소리칩니다.
검사 답변이 제대로입니다. “건달? 너 그게 무슨 뜻인 줄이나 알아? 하늘 건, 이를 달. 하늘에 통달한 사람이야. 하는 짓마다 썩은 냄새피우는 자식들이 무슨 건달이야? 깡패지.”

깡패의 어원도 알아야겠습니다. 폭력단 갱(gang)에 무리를 뜻하는 패(牌), 즉 조폭이라는 뜻의 ‘갱패’가 나왔고, 갱패가 된소리로 깽패→ 깡패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조폭은 일반인들에게 무시무시한 존재지만 그 속을 알고 나면 측은한 존재들입니다.
밝은 곳을 겁내 항상 어둠속으로만 다니고, 혼자는 무서워 무리지어 다닙니다.
호랑이나 용 같은 용맹한 동물의 힘을 빌리려 몸에 문신을 하고, 깔끔해 보이려 한여름에도 검정양복 정장을 합니다.
뿐입니까? 머리를 ‘깍두기’ 모양으로 하는 이면에는 이발비가 부족해서이거나 동작을 빠르게 하려는 서러움이 있습니다.

‘양아치’는 집집을 전전하며 걸식하는 ‘동량아치’의 줄임말이니, 폭력배들이 가장 치욕으로 여기는 호칭이죠.

깡패니 양아치니 하는 말을 굳이 자세히 풀이까지 하면서 되뇐 이유는 제가 대한민국 국회에서 10여 년째 ‘유머아카데미’를 진행하는 의도에서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국민을 대표하는 ‘많이 알고, 점잖고, 잘 난’ 국회의원들은 입에 유쾌한 유머를 올려야지, 시정잡배보다 못하게 서로를 저주하는 상소리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제 ‘갸륵한’ 뜻과는 달리 오히려 국회에서 깡패와 양아치가 창궐하는 것 같고, 누가 보면 조폭영화 찍는지 착각할 일이 수시로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끼 깡패야!”, “이런 양아치 같은 ×!”
예산을 다루는 국회 예결소위에서 여야 의원 간, 분명히 치고받은 말들이었습니다.

화가 심하게 나서 하는 말입니다. 차라리 ‘건달’ 중에서 국회의원을 선발하면 좋겠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건달의 품위를 지키려 언어구사에 좀 더 신중할 것이고, 법원에 자주 들락거리며 판검사를 많이 접해 본 그들이 오히려 법에 대해 빠삭할 거 아니겠느냐, 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