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인문학

<출판사 서평>
우리의 삶을 바꾸는 희망의 수업, 클레멘트 코스

2006년 노벨 평화상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인 그라민 은행과 은행 총재인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에게 수여됐다. 그라민 은행은 선입견과 편견을 깨고 극빈자들에게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려주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기업의 이윤과 빈민 구제를 동시에 이뤄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해 그라민 은행만큼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을 이룬 사례가 또 있다. 노숙자, 빈민, 죄수 등 최하층 빈민들에게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멘트 코스가 그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도입돼 점차 확산되고 있는 이 ‘희망의 수업’의 창시자 얼 쇼리스가 클레멘트 코스를 소개한 책이 국내에 번역됐다.

사람들은 왜 가난할까?
미국의 언론인이며 사회비평가인 얼 쇼리스는 지금부터 1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교도소를 방문해 한 여죄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사람들이 왜 가난할까요?”라는 쇼리스의 질문에 비니스 워커라는 이 여인은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죠”라고 대답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중산층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연주회와 공연, 박물관, 강연과 같은 ‘인문학’을 접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깊이 있게 사고하는 법, 현명하게 판단하는 법을 몰라 가난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때 쇼리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1995년 노숙자, 빈민, 죄수 등을 대상으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수업인 클레멘트 코스를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최고 수준의 교수진들이 모였고, 딱딱하고 어려운 강의를 피하기 위해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을 이용해 참여자들과 토론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참여자 31명 중 17명이 끝까지 강의에 참여했고 이 17명은 모두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직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언어표현 능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대부분의 대학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고, 그 자리에 부자들의 담론인 ‘노동연계복지’를 위한 직업훈련 프로그램 형태의 교육과정들이 들어서고 있다. 많은 대학에서 인문학 교육과정이 직업훈련으로 대체돼가는 이런 현상은 클레멘트 코스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존의 사회복지정책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문학이 이렇게 부자들에게서도 홀대받는 마당에 왜 굳이 가난한 이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려고 하는가?

국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될 때마다 쓰는 방법은 항상 똑같았다. ‘훈련’이 바로 그것이다. 복지정책이 이런 식으로 흐르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란 일반인들과는 뭔가 다른 존재, 즉 능력이 부족하거나 별 가치가 없는 사람들, 또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가진 존재라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클레멘트 코스는 빈민들을 동원해 훈련시키는 대신 그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도록 돕는다. 자신을 돌아보는 힘을 밑천으로 자존감을 얻고,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며 더 나아가 ‘행동하는 삶’을 살도록 함으로써 한 사회의 시민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의지를 심어주는 것은 공공근로와 같은 사회적 일자리나 빈민을 위한 소액대출 같은 제도처럼 경제적인 측면에서 직접 도움을 주지는 않지만, 빈민들이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갖게 해줌으로써 직업 훈련의 효과를 준다. 쉽게 말하면, ‘하루 먹을 물고기’가 아닌 ‘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리고 (지은이에 따르면) 이것은 일종의 의식의 혁명이며, 시민으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의 시작이다. 이를테면, 시장의 논리와 부자들의 담론을 넘어선,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가장 부드러운 혁명인 것이다.